본문 바로가기

김장훈 나이 학력 키 고향 혈액형 등 기본정보사항

나이스리
반응형


가수 김장훈은 공연 기획자이자 수필가, 사회 운동가이자 유튜버이자 강연가입니다.

63년생인 그는 올해 55세 서울 출신이며

경원대 영어영문학과를 진학했지만 중퇴하였습니다.

키는 185~187cm의 장신이며 혈액형은 O형으로 알려져있답니다.




 또 공인으로서의 직업 외에도 개인 비즈니스 또한도 하고 있습니다. 의류와 화장품 쪽입니다. 집시이기도 합니다. 음악계에 몸담으며 음반PD이자 싱어송라이터로도 활동했으며 그가 고안해낸 감독은 공연계에 많은 족적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긴급조치 19호라는 영화에도 참석한 경력이 있으며 그 이후 소박하지만 꽤 흔히 주조연을 맡으며 연기 커리어를 이어나갔습니다. 또한 방영 참석을 적게 하며 공연에 대한 홍보 부족을 인식했는지 유튜브 계정을 생성하여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유튜버로 데뷔하였으며 페이스북에 활발히 홍보했습니다. 구독의 당위성은 "홍보-]구독-]공연 관객 수 증가-]가격 인하"라는 논리로 퍼뜨리고 있고, 그 효과로 유튜브 구독자 급상승을 이루었습니다.[자신] 인터넷상에선은 숲튽훈이라고도 불린다. 그가 노래를 잘하던 시절에는 가수 김장훈, 못하는 현재에는 농담삼아 "숲튽훈"이라고 합니다. 요새는 "차에 타봐" 등의 괴곡으로 재관심 받은 가수 비, "비단길", "이 노래 웃기지" 등으로 흥한 시아준수 와 또한 젊은 층 사이에선 인터넷 밈이자 개그 요소로 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유튜브를 이용하는 어린 층이 댓글을 수백 개씩 달며 핫한 컨텐츠화가 되어가는 중. 김장훈 자신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만, 크게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또한 2019년 데뷔하여 진척한 유튜브 생방영[유튜버 데뷔 후 첫 라이브 방영입니다]에선 무슨 시청자가 "숲튽훈에 대해서 알고 있냐"라고 물어본 것에 대한 답변으로 "알고 있으며, 처음에는 조롱조로 시작했으나 이 때문에 몰려온 팬들 덕에 이미지가 좋아진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게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했습니다. 유튜브의 밈인 "김장훈vs숲튽훈"으로 발성을 선보이기도 하였으며 후에느 "숲서트"라고 이름붙인 숲에선의 콘서트도 예정중이라고 하니 10대에겐 집중을 불러일으킨 "숲튽훈"밈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는 듯 합니다. 그러나 자신에 연관된 밈을 100% 숙지한 조혜련과 다르게 완벽히 아는 것인 아닌지 후에 채팅창에 올라온 "으락캬!!" 등의 유행어는 몰라보았습니다. 




또한 방영내내 "숲튽훈"을 "숲장훈"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그 밈에 대해 정보가 늘어가는지 현재는 "숲튽훈" 컨텐츠에 대해 꿰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프로필상으로는 1967년생이지만 이는 실제 생일이 아니라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있으며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그의 출생년도가 밝혀진 적이 없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더 위라는 증거들이 많습니다. 그 중 결정적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의 1962년생인 김종진이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나와 '장훈이가 나보다 1살 어리걸랑요?'라고 말한 걸로 보아 아마도 1963년생이 정확한 출생년도로 추정됩니다. 물론 김장훈도 방영에선 봄여름가을겨울에 연관된 얘기를 할 때는 '종진이 형'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김장훈 다음으로 기부를 많이하는 박상민이 1964년생인데 김장훈을 언급하며 "내가 기부하는게 알려지나 싶으면 그 형이 한번에 기부를 매우 많이하잖아요"라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63년생인게 기정사실화 되었고 1963년 생이라면 2017년 기준으로 53 ~ 54세이므로 1963년생이라는 것이 유력합니다. 가수 이승환이 1965년 생인데요, 라디오 방영에선 형이라고 불렀습니다. 혼났습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요렇게 수많은 설이 있지만 상술 했듯이 2012년 당시 영상을 보았을 때 49세로 나온걸 보면 1963년생이 맞는데요. 주민등록상으로 1966년생이나 자신 주장으로 1962년생이라고 하는 임재범의 경우 다른 1962년생을 형님으로 모시거나 몇년마다 주장하는 



나이가 수시로 바뀌어서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김장훈의 경우 다른 연예인들이 일괄적으로 1963년생으로 대하는 걸 보면 방영용 나이만 다를 뿐 정확한[주민등록상] 나이가 1963년생일 가능성이 높다. 이승철만 하더라도 슈퍼스타K 심사 중 김장훈 얘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장훈이 형"이라고 지칭하였는데요, 한살 많은 이승환에겐도 형이라고 잘 안 할 정도로 자존심이 세다. 김장훈이 확실히 몇살 많다는 확신이 없으면 형이라고 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어린 시절 몸이 매우 약했습니다고 합니다. 조그만한 감기에도 실신할 정도였습니다고. 약한 몸 탓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고 어릴 적부터 생각하였고, 그로 인해 중학생 때부터 많은 싸움을 벌여왔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생각은 그가 가수로 데뷔한 그후에도 가요계에선 잦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요인이 됩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 연습하던 중 김장훈의 어머니의 친한 지인의 아들인 김현식을 만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두 사람은 가까워지기 시작하며 김현식은 김장훈이 언더에선 데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울 때는 서로의 집에선 자기도 했을 정도라고 하네요




1990년 10월 김현식이 작고한 후 김현식의 사촌 동생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여러 수여식에선 내 사랑 내 곁에를 대신 부를 인물로 선정되었지만, 스스로가 김현식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이 관심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해 방영을 펑크내면서 7년간 방영 참석을 금지당하게 되고, 결국 1991년에 1집 앨범 '늘 우리 사이엔'으로 언더에선 데뷔했습니다. 그렇게 방영 참석 금지가 풀린 1998년까지 언더에선 계속 활동하며 500여차례가 넘는 공연을 가졌습니다. 1998년 방영 참석 금지가 풀린 그후에도 계속 언더로 활동 하려다가 어머니가 고생하는 걸 볼 수 없어 대중가수로 데뷔했습니다고 합니다. 3집까지는 인지도가 낮아서 3집을 낼 때 기획사와의 합의로 직접 앨범 표지에 3집이라는 언급은 못하였고 그 대신 그림으로 "삼[인삼]"과 "집"으로 표시했습니다고 합니다. 3집의 타이틀 곡이 그 유명한 노래만 불렀지입니다.



4집부터 가난한 가족을 돕기 위해, 그 외에 여러가지 이유로 언더에선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대중적인 가수들의 발라드를 받아 부르기 시작하였고, 방영에 나가면서 웃긴 가수의 이미지를 쌓았으며, PD와 싸우거나 방영펑크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중적인 음악을 할 것, 방영참석 할 것, 싸우지 말 것, 세 가지 약속을 한 후에야 하나음악과 전격 계약하였고 이때부터 서서히 곡 관심과 인지도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즉, 한때는 대표적인 기부천사였습니다.


1998년에 발표한 4집에 수록된 '나와 같다면'이 대박하면서 무명가수에선 벗어났습니다.


1999년 발표한 5집의 "오페라"가 2000년 즈음에 라이코스의 병맛나는 광고에삽입되면서 인지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5집 타이틀곡은 슬픈 선물입니다. 


2000년 6집의 '혼잣말'과 유희열에겐 의뢰하여 얻은 '난 남자다'[34]또한 관심을 끌었는데요,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중파 방영에선 1위를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KBS 뮤직뱅크에선 수상하였고, 당시 상대는 S.E.S.의 [감싸 안으며] 였습니다. 


2001년 7집 앨범은 대중적인 힛트는 치지 못했지만 마니아 층을 상대로 꾸준히 사랑받았고, 2002년 7월에는 긴급조치 19호의 주연으로 참석하며 영화배우로도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활동하던 중 2002년 12월 크리스마스 연말 공연 '아듀'를 끝으로 UCLA로 유학을 떠난다 전하고 3년간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 유학이라는 게 공개 강좌[35] 단 한 과목 들은거지만.... 유학 시절 박경림과 흔히 교류했습니다고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