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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기 나이 학력과 키 고향 등 기본정보사항 정리

나이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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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이만기는

한라급 체급으로 백두급 선수들을 제치고, 천하장사 10회를 기록한 인물입니다. 백두장사는 18회, 한라장사 7회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합천이씨로 경남 의령군 출신입니다.

경남대 체육교육과, 학.석사 취득후

중앙대 체육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 했습니다.

182cm 98kg의 탄탄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지요



원래는 한라급 선수여서 웅장한 기술씨름을 구사한데다가 경기에선도 깨끗하면서도 매너있는 씨름으로 씨름팬들에겐 인정을 받았고, 강호동? 씨름 외적으로도 군살이 없는 근육질 몸매에다 여배우들하고 스캔들도 많이 날 정도의 준수한 




외모로 씨름계 최고에 관심스타였습니다. 수려하면서도 순진한 외모와 씨름선수다운 강한 힘의 심벌 때문인지, 여성들 특별히 아주머니들한테 그의 관심은 매우 높았습니다. 노인 세대의 천하장사에 대한 호감이미지는 전부 다 이만기 한 명이 쌓아올린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초창기 프로씨름이 이만기 선수 한 명 덕분에 국민스포츠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2미터 5센티미터의 거인 씨름선수 '인간 기중기' 이봉걸과 이만기의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비유되며 장안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또한 라이벌인 이준희와 숙명의 결승 대결도 여러번 치를 때마다 지금의 야구나 축구 더비 못지않은 엄청난 관심을 모았습니다. 1980년대 당시 이만기의 관심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요, "명문대에 붙으려면 이만기를 몰라야 합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즉 이만기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세상과 담 쌓고 공부해야 명문대 간다는 뜻입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김연아가 누군지 몰라야 명문대 간다" 정도 되겠다. 물론, 요즘에야 세상 물정도 잘 알아야 명문대 가지만, 어쨌든 그랬다고 합니다.



단 씨름의 최고 관심 시절에 워낙 넘사벽인 모습을 보여줬기에, 요렇게 한 선수가 계속 독식을 하면 씨름판이 재미가 없어진다는 이유로 협회에선은 이만기를 싫어했습니다고 합니다. 심판부터 이만기에겐은 박한 판정을 주는 것이 기본이었으며, 게다가 이만기가 왼손잡이인 것이 강함의 이유라고 오른손으로 잡는 허리샅바를 먼저 잡고 왼손으로 잡는 다리샅바를 후에 잡도록 프로대회 규정을 바꿨으며, 키가 작은 이만기를 간섭하기 위해 원래 무릎을 꿇고 앉아서 샅바를 잡고 일어나서 시작하던 것을 일어난 상태에선 샅바를 잡고 시작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허나 요렇게 해도 계속해서 이만기가 우승을 하자 결국 원래대로 바뀌었습니다고.. 즉 당시 시점으로 봐도 계속되는 연승에 재미가 반감되는 그런 의미로 봐도 됩니다.



자신의 목표였던 천하장사 10회 달성 뒤 정점을 찍고 최고에 자리에선 은퇴하려던 그의 발목을 잡은 선수가 다름아닌 우리들이 아는 전 씨름계의 왕이자, 현 국민 MC인 강호동.. 이만기의 편을 들자면 이미 당시엔 이만기는 대학 교수 임용 등을 이유로 은퇴를 준비하던 상태였고 그래서 이미 다른 선수들이 정상권에 부각되기 시작했던 상황인데다 강호동이 당시 120kg으로 체중이 더나갔던 면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은퇴준비시기라고해도 아직까진 27세의 한창 나이였던 이만기가 그렇게 쉽게 당할수 있느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후 복수전에선 제대로 강호동을 이기고 1991년 3월 14일 은퇴를 하였습니다.




이후 KBS 해설위원으로.. 경남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박사경과를 수료, 인제대학교에선 스포츠헬스돌봄학과 교수직을 담당하고 있으며, 대한씨름연맹에 바른 소리하다가 영구제명을 당하였는데 덕분에 씨름협회는 개막장 소리를 들었고 이만기는 더욱 존경받게 되었습니다나 뭐라나...



이후 2012년 대한씨름협회의 40대 회장으로 출마를 했지만 무산되었습니다.


사실 중간에 씨름 연맹의 경기 운영때문에 편파 판정이 나자 이만기가 화가 나서 경기 중간에 퇴장한 일이 생중계된 사건도 있어서 이래 저래 연맹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예능인 무릎팍도사에선은 그냥 넘어갔지만 보통 뉴스매체와 인터뷰때 꼭 이 흑역사가 들어간다고 하네요


이후 사실상 해설위원을 그만두고 인제대학교 스포츠헬스돌봄학과 교수로 현재까지 하고 있습니다. 

물론 방영인도 같이 병행중~



2012년에는 예능 프로 불멸의 국가대표에도 참석, 종합격투기 선수 김동현을 씨름대결에선 휙 집어 던지며 아직 천하장사는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사실상 강호동이 있기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임은 틀림없습니다. 먼저 서술한 1박2일 명사특집에선 강호동은 참석분 내내 이만기를 깍듯이 모셨고 어릴적 목표이자 많은 꿈이었던 이만기와 중학교시절 얼마동안 집에선 동거하며 합숙훈련도 했었습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하며 고향 선배를 동경했습니다. 비록 세간에선은 이만기를 물리친 악동 이미지가 강했지만, 늘 존경해왔고 선망해온 선배 선수에겐 일종에 잡질[?]을 행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더욱 더 열심히하여 인정 받고 싶었던 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둘다 은퇴한지 20여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좋은 선후배관계를 유지하며 씨름연관 행사가 있으면 이만기가 섭외요청도 해오기 전에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나서서 행동하는 편입니다. 여러모로 인생관과 승부욕, 나아가 예능에선의 이미지 형성 및 관리에도 나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예 반말이 컨셉인 아는 형님에선마저도 강호동이 이만기에겐 깍듯이 교수님 하면서 존댓말을 쓰다가 걸렸을 정도입니다.



이후엔 자기야 백년손님을 끝으로 잠시 방영을 안 할줄 알았지만 2018년 12월 4일부터 TV조선 예능 아내의 맛에 아내인 한숙희, 둘째 아들과 같이 다시 참석중입니다.


그런데 아내의 맛에 나와서 많은 악플이 다르게고 있습니다. 경상도 남자가 갖고 있을 것 같은 편견과 이미지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 실제로 아내가 보살이라는 댓글이 가장 많이 보이고 있으며 자신도 이를 의식했는지 평소 부인이 갖고 싶어하는 200만원 호가의 건조기를 사주었습니다. 

2019년 6월 13일에 첫방영을 한 JTBC 뭉쳐야 찬다의 '어쩌다FC' 멤버로 참석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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