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젤리나 졸리의 남자들과 이혼, 나이와 배우의 길

나이스리
반응형


미국의 배우이자 감독. 현재 헐리우드에선 많은 영향력을 가진 배우 중 한명이자 각진 턱, 두꺼운 입술로 대표되는 헐리우드 미녀 섹시스타 여배우의 아이콘다.

75년생인 그녀는 올해 45세로 국적은 미국과

캄보디아 이중국적인데 이유를 보니

그녀의 구호활동에 감명한 캄보디아 측에선 명예시민을 수여한 것이라고 합니다.



배우 존 보이트와 배우 마셸린 버트란드의 1남 1녀 중 둘째입니다. 아버지쪽으로는 독일인과 슬로바키아인, 어머니쪽은 캐나다계 미국인으로 프랑스인, 네덜란드인, 독일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혈통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아버지의 성 '보이트'를 공식적으로 지웠습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는 아래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때 아버지가 방영에 나와 딸의 목을 조르고 싶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로 험악한 사이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툼 레이더]에선 사이 좋은 부녀로 참석해 애틋한 연기를 펼쳤다[…] 또한 배우들 




트레이드 마크는 각진 턱, 광대뼈와 입술. 특별히 졸리의 입술은 두꺼운 입술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유명합니다. 전세계에선도 인정하는 미국의 대표 헐리웃 여배우들 중에선도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라면 말 다했습니다. 또한 누구도 닮기 힘든 매우 훌륭한 모습을 소유한 지라 오랜 기간 할리우드 최고에 스타덤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잘 모르지만 어린 시절부터 개인사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배우입니다. 우선 아버지 존 보이트와 어머니 마셸린 버틀런드는 졸리가 1살이 되던 해 이혼했습니다. 이혼 사유는 아버지의 불륜. 게다가 이혼한 후에 보이트는 전처가 두 아이들을 키우며 어렵게 사는데도 전혀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지 않았고, 아이들에겐 애정이나 집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문제로 가정이 파탄나는 상황을 겪다보니 자연히 졸리는 아버지를 심하게 원망하며 자라네요.


어렸을 때는 사람들과 껴안는 걸 싫어했습니다고 합니다. 게다가 엄마와 껴안는 것도 싫어했습니다고. 10대와 20대 초반에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면도칼로 자해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에선 "당시 난 다른 사람과 어떠한 유대감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고 토로한 바 있습니다.



10대 초에 연기 학교에 들어갔으나 2년 만에 중퇴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후에 '장의사'가 꿈이었던 졸리는 '시체 방부 처리법'을 공부해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시절 애인과 머리지고 나서 다시 연기학교로 돌아갔으며 ,16세때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했습니다. 검은 옷만 입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분위기가 매우 어둡다는 이유로 번번히 오디션에선 탈락했습니다고 합니다. 이후 뉴욕대학교 예술학과에 진학, 연기를 공부하고 성실하게 졸업했습니다.




섹시한 액션 스타로 유명하지만, 아카데미상 1회, 미국 배우 콤비상 2회, 골든 글로브상 3회를 수상하였습니다.


1993년 저예산 영화 [사이보그 2]에 참석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고, 1995년 사이버 스릴러 영화 [해커스]에선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습니다.



1997년 [조지 웰러스]로 골든 글로브상을 받으면서 전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졸리는 게리 시니스가 연기간 알라버마 주지사 조지 월러스의 2번째 아내 코르넬리아 윌러스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관심을 받으며 골든 글로브상 최우수 미니시리즈/ 텔레비전 영화를 비롯해 여러 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졸리는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998년 졸리는 HBO의 [지아]에선 슈퍼모델 지아 카란지 역으로 참석했습니다. 영화는 1980년대 중반 헤로인에 중독되면서 삶과 경력이 파괴되고, 에이즈로 삶을 마감한 카란지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입니다.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상과 에미상에 2년 연속으로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골든 글로브와 미국 배우 콤비상을 수상했습니다.


1999년 [본 콜렉터]의 연기가 호평을 받으며 점점 더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2000년 [처음 만나는 자유]로 또 한번 골든 글로브를 수상하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까지 주로 TV 드라마나 인디 영화에선 활동했기 때문에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녀가 대중적 인지를 얻고 스타로 떠오르게 된 작품은 2001년 [툼 레이더]다. 여러모로 조니 뎁과 유사한 경력. 영화 자체는 평은 안좋지만 그건 시나리오와 감독의 문제였고, 지금까지 많은 라라 크로프트 모델들이 나왔지만, [툼 레이더] 영화에선 원작 게임의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의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썰면 한 접시' 입술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인물이라는데는 다들 이견이 없을정도. 이후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여성 액션 스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2005년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2008년 [원티드], 2010년 [솔트], 2010년 [투어리스트] 등 액션 영화의 주연이 되어 연달아 성공시켰습니다. 


2009년, 2011년, 2013년에는 [포브스]에선 '할리우드에선 가장 참석료가 높은 여배우'로 선정되었습니다.


여러 모로 섹시함으로 유명한데도 007 시리즈에선 본드걸이 되는 건 집중없습니다고 합니다. 왜냐면 제임스 본드역을 담당하고 싶어서. 그리고 2010년 스파이 영화 [솔트]에선 주연을 맡으면서 그 염원을 이루었습니다.


2008년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체인질링]에선 부패한 정부관료들에 의해 어처구니 없이 자기 아이를 바꿔치기당하는 상황을 맞은 여성을 열연하며 관객들을 감명시켰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대박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2011년에는 [피와 꿀의 땅에선]로 영화 감독 데뷔를 했습니다. 2014년, 차기작으로 감독한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여 실재 인물 루이스 잠페리니가 전쟁에선 겪은 상황을 그린 영화 [언브로많은]이 개봉했습니다. 본 영화의 주요 섭외 중에는 미야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주인공인 루이 잠페리니와 안젤리나 자신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1억 6천만불의 수익을 올리며 대박에 성공합니다. 이 영화에선 특별히 일본군의 학대가 묘사된 부분이 많아 일본 우익의 공적이 된 듯합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는 등 인권운동가로도 활동중입니다. 국제적 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UN 국제시민상의 첫 수상자가 되었으며, 수많은 국제인권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2014년 영국 왕실로부터 훈장을 받았습니다. 현재까지 유니세프에 개인이 낸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했으며, 10여년간 자비로 캄보디아, 시에라리온, 탄자니아, 파키스탄 등 30여개국의 난민 캠프를 방문하여 이들의 처지를 알리고 국제적 원조를 받도록 도왔습니다. 수단의 종교탄압을 비판하다가 수단정부에선 방문을 금지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 국회에 접촉하여 국제 난민을 위한 법을 지정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습니다. 2015년 8월에는 유엔난민기구 특사로 미얀마에 가서 아웅산 수지와 같이 미얀마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2005년에는 많은아들의 이름을 딴 매덕스 졸리 재단을 통하여 캄보디아 최빈곤층에겐 거주지, 수자원, 교육, 의료 등을 지원하는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재단은 이후 매덕스 졸리-피트 재단으로 명칭을 바꾼 후 아프리카에선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를 확대해나가는 중입니다. 또한 캄보디아, 케냐, 아프가니스탄 등에 15개 이상에 어린이 학교를 세웠으며, 딸의 고향인 이디오피아에 자하라 어린이 병원을 건립하여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이를 치료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출처 


캄보디아의 매덕스와 이디오피아의 자하라 베트남의 팍스를 입양하여 피트와 같이 키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 [피플]의 2012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인물 순위에선 1위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졸리의 과거와 사생활로 인해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렇습니다고해서 매년 100억원 가까이를 기부하는 그녀의 선행과 아름다움을 부정 할 수는 없습니다.


첫 남편 조니 리 밀러와 1996년에 결혼해 1999년에 이혼했으며, 두번째 남편 빌리 밥 손튼[나이차가 엄청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과 2000년에 재혼했으나 2003년에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 세번째 남편인 브래드 피트를 만납니다. 여담으로 양성애자이며, 첫 남편인 밀러와 결혼하기 전에 일본계 모델이자 배우인 제니 시미즈와 사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트와 사귀고 나서 여자와의 관계를 더는 갈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고 밝혔습니다. 배우 이미지도 양성적인 매력이 있어서, 레즈비언 역도 꽤 잘 소화해냈고 여성 팬도 일반적인 여성 섹시 스타와 다르게 꽤 많습니다.


브래드 피트와는 2005년 작품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포스터를 나란히 같이 장식했습니다. 영화를 같이 찍은 해 전처 제니퍼 애니스톤과 피트와 엮이는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더욱 유명세를 탄다. 덕분에 포털 사이트에선 졸리 연관 기사가 관심 뉴스로 뜨면, 댓글에선은 꼭 졸리가 나쁘다느니 피트가 나쁘다느니 애니스톤이 불쌍하다느니 하는 댓글이 우수수 나왔었습니다. 덕분에 귀네스 팰트로는 묻혔습니다... 사실 직접적으로 증거는 없고 그러려니 생각에 불과할 뿐입니다. 일단 엮인 세 명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고 일축하였고.




연애 초기까지만 해도 졸리의 괴팍하고 불같은 성격을 피트가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의외로 무난한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부와 봉사활동에 흔히 참여해 이미지가 엄청 좋아졌습니다. 할리우드의 대표 잉꼬 커플로 손꼽히며 둘이 합쳐 '브랜젤리나'라고 불릴 때가 많습니다. 피트와의 사이에선 낳은 아이들인 샤일로, 녹스, 비비언, 입양한 아이들인 매덕스, 팩스, 자하라까지 모두 여섯 명입니다. 지금도 추가 입양을 고려 중이라고 하지만 아직 입양 소식은 없습니다. 쌍둥이를 낳은 후, 잡지 '피플 앤 헬로'에 쌍둥이 사진을 판매했습니다. 무려 1400만 $에! 이는 가장 비싼 유명인 사진으로 역사에 기록됬습니다. 이 돈은 졸리-피트 재단에 기부됬습니다.


2009년 별거와 결별설이 나돌았으나 자신들은 이를 완전히 부정하며 오히려 기자들 앞에선 대놓고 염장을 질렀습니다[…] 2010년 1월 24일부터 이혼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는 루머가 널리 퍼졌었습니다. 두 사람은 재산을 분할하기 위해 유명한 변호사에겐 이혼 소송을 수임하고, 육아 문제에선은 공동 양육권을 갖기로 했습니다 카더라. 이로써 피트가 애니스톤과 다시 합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허나 두 사람은 애초에 결혼한 적이 없으니 이혼이니 뭐니부터가 웃긴 얘기. 게다가 소문의 근원지가 되는 영국 신문사는 가십거리라면 뭐든지 싣고 보는 습성이 있어서 소스 신빙성이 한없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 커플의 대변인도 이별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피트-애니스톤 재회설이 간간히 제기되었지만, 애니스톤은 나름대로 다른 남자와 잘 사귀고 있습니다. 현재 애니스톤은 저스틴 셔룩스와 약혼한 상태. 그리고 비단 졸리가 아니더라도 한국에 흔히 번역되는 헐리우드 연예인들의 기사는 대부분 신빙성 없는 루머를 확인도 안하고 퍼오는 것입니다. 졸리-피트-애니스톤 셋을 가지고 거의 소설 수준의 기사가 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공식 인터뷰라든지 영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신빙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2012년 브래드 피트가 청혼했지만, 두 사람은 미국 전역에선 동성결혼이 합법화하기 전까진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201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2014년 8월 23일 브란젤리나는 프랑스의 가족 예배당에선 아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네요. 연관기사



2016년 9월, 안젤리나 졸리가 브래드 피트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 경과에선 졸리 측에선은 브래드 피트가 전용기 내에선 맏아들 매덕스에겐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둘렀습니다며 아동 학대 의혹을 제기하였으나, FBI의 수사 결과 무혐의로 결론이 났습니다. 공식적으로 법원에 제출된 이혼 사유는 "극복할 수 없는 성격 차이". 단 피트의 아동학대 의혹을 제기하면서 임시 양육권은 모두 졸리가 가지고 있는 상태. 이에 대해 피트 측에선은 이혼철회 및 양육권에 대한 재협상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로 나옵니다고 합니다.

2017년 3월 피트와 화해설이 돌고 있습니다. 다시 합친다는 건 아니고 이혼 후, 양육권 문제 조정 중에 나온 소리. 아동학대로 고발할 정도로 험악하였는데 기사대로 '오해'가 풀린 건지, 멘탈갑인지 알 수 없는일.


2018년 11월에 자녀 양육권이 해결되었습니다고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