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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트니스피어스 복잡한 남자관계, 나이 키 혈액형은?

나이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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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트니 스피어스는 1981년 12월 2일 미시시피 주의 매콤에선 1남2녀 중 둘째[차녀]로 태어났고 루이지애나에선 자라네요. 올해나인 37세이며

163cm B형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복잡한 그녀의 남자관계


짧고 굵은 연애관계가 많았습니다. 살면서 결혼은 2번 밖에[ 안했지만[ 남자친구는 항상 있어왔습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관계는 워낙 유명합니다. 두 명 다 시대를 풍미한 팝스타이면서 얼마전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명 다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비쥬얼 커플이라 응원하는 팬도 많았습니다. 둘은 같은 디즈니 출신으로 어린시절부터 같이 활동해온 친구였습니다. 2000년부터 둘이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사귄다고 인정했습니다. 이 시기 최고에 스타였던지라 당연하게도 뉴스와 시청자들의 집중이 극에 달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궁금해 했습니다. 



이 오랜 커플은 브리트니가 3집 앨범을 발매한 후 깨지고 만다. 이때 저스틴이 브리트니의 배신을 암시하는 노래를 부르자 브리트니도 맞불을 놓는 등 좀 시끄러웠고[54] 무엇보다 저스틴의 폭로에 의해 혼전순결 서약을 했었던 브리트니가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이미 관계를 맺은[55] 사이라는 것이 알려져, 브리트니는 사랑도 잃고 이미지도 실추[56]되는 이중고를 겪었습니다. 브리트니는 이 당시 섹시한 이미지의 댄스와 노래를 했지만 뭐 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적으로는 마마걸스러운 이미지를 내세웠는데 미국에선 이 이미지는 많은 이익이 됬습니다. 혼전순결 서약과 모든 의견에 어머니를 존중합니다는 등 착한 소녀로서의 이미지를 많이 부각시킨 게 특징이었습니다. 라이벌로 여겨졌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거의 처음부터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았음을 인정했던 것과 대조적이었습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다른 아이돌들에 비해 심히 순수한 이미지를 주장한 바가 




없지 않기에 덕분에 '가식 떤다'라는 의견도 나왔었던 때라 마침 터진 저스틴과의 스캔들은 브리트니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술된 MTV 뮤직 어워드에선 마돈나와의 키스 퍼포먼스를 했을 때가 두 사람이 머리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이때 카메라가 관중들 속에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저스틴의 표정을 재빠르게 클로즈업하였는데 표정이 굳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이 때 이후로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새 앨범 활동 때마다 브리트니를 이용합니다는 브리트니 팬들의 원성이 잦다. 실제로 3집 컴백 당시 브리트니를 재언급해서 브리트니팬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고 당해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미국 최다판매앨범 1위를 하고 그래미 4관왕을 하고 브리트니보다 잘 나가서 더욱더 브리트니 팬들의 부러움과 질투심에 찌질남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때의 이별이 많은 충격이 되었는지 이후의 남자 관계는 계속 꼬이기 시작합니다. 2004년 초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과 라스베가스에선 술에 취해 홧김에 결혼했습니다. 55시간 만에 쿨하게 다시 이혼하기도 했습니다. 상대 남성 또한 특S급으로 쿨해서, 위자료 청구 소송이나 재산분할 소송 같은 짓을 안 하였고, 브리트니는 감사의 뜻으로 스포츠카를 선물했습니다고 합니다. 같은 해 7월 자신의 인생 최고에 혹 케빈 페더라인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3개월 만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케빈 페더라인은 브리트니와 사귄다는 스캔들이 터질 때 이미 동거하는 여자와의 사이에선 아이가 하나 있었고, 게다가 그 여자가 케빈의 둘째를 임신 중인 상태였습니다. 사실상 자녀를 가진 유부남이었던 셈. 브리트니는 이 사실을 몰랐지만 어떻게 보면 불륜이라고 할수도있습니다. 어떻게 보면이 아니라 불륜 맞잖아 그런 와중에 브리트니와 결혼합니다고 나온 거라 세간의 의견은 '브리트니, 그 남자는 안돼!'였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천하의 개쌍놈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동거 중인 임신한 여자의 남자를 뺏은 브리트니를 비난하는 여론도 많았습니다. 세계의 아이돌이던 그녀가, 이미 자녀가 있는 백업 댄서와 결혼합니다니, 팬이 아니었던 사람들조차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에겐 그런 얘기를 귀담아 들었을리가... 2004년 말 'Do Something''이 수록된 컴필레이션 앨범을 내놓고, 라디오에선 다음 앨범 [The Original Doll]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지만 임신으로 인해 사실상 전면 중단. 그날 KISS FM에선 공개된 곡인 'Mona Lisa'는 재편집되어 Britney + Kevin EP에 수록되었습니다. [The Original Doll]에선 작업한 데모들은 굉장히 많은데요, 유튜브에선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 한 곡인 'Rebellion'은 유명 팝 가수인 Aaliyah에겐 영향을 받은 곡이기도 합니다.




단 '애 딸린 이혼남 백댄서는 어울리지 않늡니다.'는 브리트니 팬들의 시각을 제외하면, 페더라인은 전처에겐 충실하지는 않았지만, 브리트니에겐 충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57] 이혼 또한 일방적으로 문자로 통보당한 것이었습니다. 자식 교육에 있어서도 브리트니는 끊임없는 구설수에 올랐으나[대표적으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운전을 했습니다.] 페더라인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결국 법원에선 자식 양육권을 브리트니에겐서 박탈하고 페더라인에겐 주었을 정도다. 그리고 말이 동거녀지 애까지 임신하고 있던 여자의 남자를 NTR 해간 브리트니도 별로 떳떳한 입장이라고 보기는 뭐합니다. 결과적으로 서로에겐 상흔만 남긴 결혼이었던 셈. 그래도 세월이 약인지 얼마전에는 둘이 같이 아들의 축구 경기를 보러 오는 모습이 파파라치에 포착되기도 하였습니다. Oops!... I Did It Again


페더라인과의 결별후에도 JR 로템[JR ROTEM], 이삭 코헨[Isaac Cohen], 등 여러남자를 만났으나 그 중에선도 가장 압권은 제이슨 트라윅[Jason Trawick, 1971년생] 인데 이 사람은 무려 브리트니의 매니저다에. 둘은 결별을 하였는데요, 제이슨 트라윅이 바람을 피워서다. Perfume 가사에 당시 상황이 잘 녹아있는데 아마 전 여자친구와 제이슨 트라윅 그리고 브리트니 셋의 관계가 얽힌 듯.


이 후에도 3명정도의 남자를 더 만나지만 2017년부터는 샘 아스가리[Sam Asgari] 라는 13살 연하의 1994년생 남자 모델과 연애중으로, 인스타그램으로 대놓고 염장질을 하는 등 3년째 잘 만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건설 일을 하는 등 풍족한 집안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브리트니는 무용 수업이나 여러 강의에 참석하는 등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보였습니다. 아예 5살 때는 무대에도 서본 경험이 있습니다고 하니 브리트니 또한 춤에 흥미를 보였고, 노래를 배우며 준비를 해나갑니다. 8세에는 애틀랜타에선 열린 미키 마우스 클럽 오디션을 봤으나, 매우 어리다는 이유로 탈락했습니다. 이때 브리트니를 눈여겨 본 낸시 칼슨은 뉴욕에 있는 에이전시를 주선해주면서 뉴욕에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가수가 되기 위해 꾸준히 이곳저곳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오디션 프로그램인 '스타서치'에 참석하여 'Love Can Build A Bridge'를 불렀습니다. 어린 나이에 수준급의 실력을 보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아쉽게도 우승을 하진 못했으나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여러 광고 제의도 들어오며 그녀가 유명해지기 시작하였고, 1992년엔 어렸을 적부터 고대하던 미키 마우스 클럽에 선발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첫 데뷔 연도가 1993년으로 기록되는 이유. 이때 같이 선발된 사람이 훗날 엔싱크 리더이자 브리트니의 첫 남자친구가 되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가수 데뷔 이후 라이벌로 여겨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입니다. 당시 미키 마우스 클럽은 스타들의 등용문으로도 유명하였는데요, 불행으로 브리트니가 섭외되고 나서 2년만에 프로그램이 폐지되었습니다. 폐지된 이후 고향으로 내려와 지내다가 1997년 5인조 걸 그룹 이노센스의 멤버로 데뷔하려 했으나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세계적 레코드사인 '자이브 레코드'와 계약을 체약하고 데뷔를 준비하였고, 당시 '자이브 레코드'도 브리트니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줬습니다. 


1998년 10월 23일 그녀는 데뷔 싱글인 ...Baby One More Time을 발매했습니다. '...Baby One More Time'은 미국을 포함해 세계 주요 국가 1위를 모두 석권하며 뉴밀레니엄 대스타의 탄생을 알렸고, 파급력 또한 대단해 순식간에 브리트니는 세계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브리트니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유명세에 불구하고 빌보드 싱글차트에선 2주 1위에 그쳤다.  '...Baby One More Time'의 뮤직비디오가 당시 관심에 한 몫 했습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원래 소속사에선은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촬영할 예정이었으나, 브리트니가 이를 거부하고 여학생 컨셉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당시 생 신인이던 브리트니의 의견이 신의 한수였던 것입니다. 


1999년 1월 12일 발매된 데뷔 앨범 '...Baby One More Time'는 싱글에 이어 여러 기록을 세우며 이례적인 빅 힛트를 쳤다. 미국에선만 1,400만 장, 전세계적으로 2,60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엔싱크, 백스트리트 보이즈 등 남자 아이돌 그룹이 판치던 팝계에 브리트니의 출현은 혜성과도 같았습니다. '...Baby One More Time' 이외에도 여러 싱글이 발매되었고 또한 많은 힛트를 치며 1집은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같은 해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도 데뷔와 동시에 많은 성공을 거두었고 두 사람은 라이벌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 발매된 2집 [Oops!... I Did It Again!][2000년]은 미국에선 1000만 장, 전세계적으로 2000만 장을 판매하는 등 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브리트니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같이 당시 오랫동안 명맥이 끊어져 있었던 단독 여가수의 시대를 열며 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시기 10대 단독 가수 중 가장 높은 판매량, 데뷔 앨범으로는 가장 높은 판매량, 여자 가수로는 가장 높은 첫 주 판매량 등의 여러 기록을 세우며 넘사벽의 관심을 구가했습니다. 1, 2집 때의 브리트니의 앨범은 '자이브 레코드'의 총 PD였던 맥스 마틴[Max Martin]의 색깔이 진하게 드러나는 일종에 '캔디 팝'이었습니다. 실제 이때의 브리트니의 모습을 보면 섹시하기보다는 귀여운 이미지가 강하였고, '귀엽고 춤 잘 추는 풋풋한 이웃집 소녀'의 모습으로 어필했습니다.  10대 시절 브리트니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엄마 말 잘 듣는 마마걸 + 친근한 이웃집 소녀였는데 이 점이 청소년 문제에 있어서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미국에선 많은 호감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윽고 2000년 열린 제42회 그래미상에선 최고에 신인상 부문 후보에 올라 참석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보다 더 많은 관심을 누린 브리트니를 수상자로 예측했지만  모두의 예측을 깨고 수상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에겐 돌아갔습니다. 



사실 브리트니는 이미 4집 전부터 슬슬 잡음이 나오기 시작하던 차였습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관계, 연골 부상 등등 악재가 많았기 때문. 그러나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관계는 결과적으로 섹시스타로 이미지 변신하는데 도움도 줬고, 다양한 음악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게 만들어준 시초 였기에 나름 전화위복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다름 아닌 케빈 페더라인과의 결혼. 이 결혼과 같이 브리트니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결혼 후 아이를 낳을 때까지 브리트니는 그동안의 웅장함은 어디 둔 건지, 체중도 늘고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은 모습으로 파파라치에 유독 많이 찍혔습니다. 팬들은 이런 브리트니의 모습에 많은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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