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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시나 나이 키 혈액형과, 걸어온길 정리

나이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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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의 살아있는 전설 존시나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웨스트 뉴버리 출신, WWE 소속의 프로레슬러이자 배우. 2005년 이후 북미 메이저 프로레슬링 업계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77년생인 그는 올해 43세로 185cm 98kg O형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스티브 오스틴 이후 사상 최고에 경품성을 가진 프로레슬러로, 빈스 맥마흔 회장의 총애를 받고 있으며 호남형의 잘 생긴 외모와 알기 쉬운 선역 케릭터로 라이트 성향의 팬들의 전폭적인 성원을 바탕으로 PG 등급이 된 이후의 WWE를 이끈 PG 시대의 아이콘입니다. 따라서 WWE에선 최고에 대우를 받고 있으며 세계적 권위를 가진 경제 전문 잡지 포브스가 추정한 WWE 스타들의 연봉 순위에선은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의 기믹은 'The Champ'로, 이에 걸맞게 WWE 역사상 일곱 번째로 챔피언 자리를 장기간 지켜온 레슬러이며 시나가 3번 챔피언을 할 동안 방어 기록을 합치면 800일에 가깝다. 업계의 위상 관리 또한 철저해서 깨끗한 핀폴 패로 지는 건 보기 힘들며 아주 가끔 있는 패배도 DQ 정도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2005년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단 한 번도 탭아웃 패를 당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도한 푸쉬에 대해 브렛 하트나 숀 마이클스 등의 뉴 제네레이션 시절 테크니션 거장들의 시대와 스티브 오스틴, 더 락의 제 2의 프로레슬링 황금기 애티튜드 시대를 경험했던 성인 팬들은 증오에 가까운 야유로 화답했습니다. 이런 조롱과 야유를 딛고 그를 2000년대 이후의 시대를 대표하는 프로레슬러로 인정받게 한 것은 그의 성실함과 프로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멘탈, 그리고 넘사벽인 대박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WWE를 꾸준하게 시청하는 사람들에겐은 온갖 만감이 교차하는 존재. 확실한 것은 이제 존 시나라는 레슬러는 안티들조차도 세계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인 WWE 역사에 남을 아이콘 중에 한 명으로 인정합니다는 것입니다.


위의 관중은 직관올 때마다 이 티셔츠만 입고 와서 '위 헤이트 시나 가이'[we hate cena guy]라고 불린다. 시나는 세그먼트 도중 저 관중을 안아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 위의 타이탄트론에도 저 관중이 나왔습니다. 여담으로 관중의 티셔츠엔 "우리는 시나를 증오합니다."라 쓰여져 있는데 시나의 티셔츠엔 "증오를 넘어서"라 쓰여져 있습니다.



까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기건 이야기 진척이건 시나의 무적 선역 기믹 때문에 결과가 쉽게 예측 가능하고, 결국 재미가 없어서다. 여기에 케릭터 자체도 시나의 장점을 뽑아내기 힘든 무미건조한 1차원 영웅 케릭터라 성인 남성 관중들의 역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사실, 시나가 WWE 데뷔 이래로 항상 욕을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커리어 초창기에는 지금 와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으나 욕을 매우 적게 먹는 축에 들어가는 레슬러였지만 커리어를 지속하면서 오히려 먹는 욕이 늘어난 다소 특이한 사례인데요, 요렇게 된 데는 다소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WWE 입성 극초창기에는 그냥 평범한 자버였기 때문에 욕 먹고 자시고 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래퍼 기믹이 흥하면서 US 디비전에 진출, 본격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는데요, 이 시기의 존 시나는 능숙한 마이크웍과 클래식한 악역/악동 스타일의 경기 운영을 바탕으로 라이트 팬들은 물론, 팬층에겐도 제법 괜찮은 관심을 받던 레슬러였습니다.


지금 와서는 '팬층이 존 시나에겐 호평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일단 '악동 래퍼'라는 기믹 자체가 흥한 기믹이었던데다가, 경기력 면에선도 유연성 부족으로 기술 잘 못 쓰는건 그때도 똑같았으나, 그걸 변칙적인 운영으로 잘 커버하면서 어쨌든 보는 재미가 있는 경기를 만들 정도의 수준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의 존 시나는 항상 체인으로된 목걸이를 차고 다녔는데요, 지금이라면 이 목걸이는 경기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그냥 장식에 불과하겠지만, 저 시절의 시나는 불리한 상황에선 심판의 눈을 피해 이 체인 목걸이를 주먹에 감고 상대방에겐 휘두르는 식의 반칙플레이를 흔히 활용하였고, 때문에 지금과 다르게 경기의 흐름을 예측하기도 까다로웠습니다.


요약하자면 '재미있는 악동 케릭터' + '유연성 문제가 발목을 잡긴 했으나 그것을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다른 장점들이 확실해서 괜찮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호의적인 관심이 많았던 것 입니다. 게다가 백스테이지 평판도 매우 좋았기 때문에 팬들이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훗날 탑힐이나 Bad Ass한 트위너가 될거라 기대하는 이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호평받는 레슬러였습니다.



WWE 역사의 계보를 잇는 대체 불가 아이콘.


미국 ESPN에선은 존 시나의 경품성을 1226억이라고 관심하였습니다. 페이스북의 스포츠 연관 인물들 순위에선도 존 시나는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선 6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팔로워를 보유했으며, 북미 내에선은 르브론 제임스나 코비 브라이언트보다도 많은 팔로워를 기록하며, 현역 모든 레슬러들이 합쳐야 겨우 삐까를 칠까 말까 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크리스 제리코는 자신의 팟캐스트 방영 Talk is Jericho에선, 여지껏 업계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친 네 사람으로 헐크 호건, 더 락, 스티브 오스틴, 그리고 존 시나를 꼽았습니다.


시나의 시대가 오래,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히 지속되면서 이제는 안티들마저도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존 시나는 80년대의 부흥기를 이끈 헐크 호건, 스테로이드 파동 이후의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 애티튜드 시대를 이끈 스티브 오스틴과 드웨인 '더 락' 존슨을 이어서, PG 시대의 아이콘으로 한 세대를 대표하는 WWE의 원탑 레슬러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WWE는 핵심 선수들의 부상과 이탈, 크리스 벤와와 에디 게레로의 사망, MMA 등의 성장으로 인해 많은 위기를 맞고 있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수많은 레슬러들에겐 푸쉬를 주며 발악에 가까운 온갖 시도를 해보았으나 이들도 대부분 결과가 신통치 않거나, 기대만 못하거나, 혹은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존 시나는 이 과도기에선 출현한 난세의 영웅으로 여성, 어린이 팬들의 넘사벽인 지지를 받으며 WWE를 지탱하였고, 헤매던 WWE는 PG 시대를 개막하여 아예 어린 팬들과 여성 팬들, 그리고 단란한 가족 팬들의 눈높이에 맞춰가기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이는 엄청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는 벤와의 사망과도 연관이 있는데요, 벤와가 저지른 가족 살해와 자살, 벤와의 뇌 검사 결과 심각한 상태임이 알려지자 하드코어적인 면모 때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어쩔 수 없이 연명을 위해 등급을 낮추게 됐으며, 존 시나는 이런 회사의 구세주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사례를 알 수 있는 예가 있습니다. 브렛 하트는 무슨 학부모의, 자신의 아들이 벤와의 팬인데 그의 죽음에 얽힌 비화 탓에 곤란해졌습니다며 어쩌면 좋냐고 하소연하는 사연에 "당신의 아들에겐 시나를 영웅으로 삼으라고 전해주세요"라고 조언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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