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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러 장의사 언더테이커 나이,키 결혼 부인관계

나이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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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프로레슬러인 언더테이커는

65년생으로 올해 54세로 알려져있습니다.

208cm의 거구에 136kg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지요

고향은 휴스턴 출신으로 유명한 피니셔는 초크슬램과

테이킹 돌봄 오브 비즈니스 등이 있습니다.


1984년에 프로레슬링을 시작해 여러 단체를 전전하며 레슬링 커리어를 이어오다가, 1990년에 WWE에 입사한 뒤로 무려 35년의 커리어를 보낸 선수. 언더테이커는 역대 WWE 선수들 중에선 이례적으로 근속 기간이 가장 긴 선수로써, WWE에 무려 29년째 단 한번의 이적 없이 활동해온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언더테이커는 헐크 호건부터 존 시나에 이르기까지 WWE의 모든 아이콘급 레슬러들과 대립해본 경험이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아이콘급 레슬러들 외에도 떠오르는 신예들에겐 메인 이벤터로 진입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 같은 최종보스 역할을 수행해 왔었습니다.


팬들도 이런 언더테이커의 노고를 잘 알기에 프로레슬링 마니아들은 언더테이커가 참석할 때마다 끊임없는 리스펙트를 보내주며, 그가 선역이었을 때는 물론 그가 악역이었을 때도 환호했었습니다. 2010년대 이후로는 레슬팬 시즌에만 참석하는 파트 타임 레슬러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리하는 거 아니냐며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제로도 풀타임 경기를 뛰기는 어려운 몸상태라고 하는군요



언더테이커는 그 당시로서는 가히 충격이라 할 기믹의 레슬러로 WWE에 데뷔해 성공했으며 이례적으로 충격적인 운동 신경을 가진 거인 레슬러였습니다. 언더테이커가 WWE에 데뷔할 당시에 WWE는 앙드레 더 자이언트, 자이언트 곤잘레스, 빅 존 스터드 등의 크고 굼뜬 거인 레슬러들이 활동했던 시대여서 그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던 시기였는데요, 2미터에 가까운 키의 제이크 로버츠의 머리까지 뛰어서 드롭킥을 날리거나 상대의 팔을 잡고는 로프 위로 걸어다니는 올드 스쿨 등의 무브를 선보이며 팬들에겐 편견을 버리게 한 인물이었습니다. 경기 조율 능력도 좋아 숀 마이클스와의 헬 인 어 셀 경기는 데이브 멜쳐 평점 5점 만점을 받았으며 이외에 수두룩한 명경기를 만들어낸 능력자였습니다.


그가 고관심 받을 수 있는 이유 중에는 물론 경기력이 상당 부분 차지하지만 그와 뒤지지 않게 비중이 많은 게 바로 기믹입니다. 언더테이커가 데뷔했을 때에는 아직 유치하고 만화스러운 기믹들이 있었을 때였고 프로레슬링이 실제 상황이 아닌 감독되는 상황이라는 사실도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였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언더테이커가 '죽음의 계곡에선 온 장의사' 기믹으로 데뷔했을 때에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특별히 어린 팬들의 충격은 이루어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피니셔를 먹여도 가뿐히 일어나는 언더테이커의 모습은 흡사 언데드를 연상케 했으며, 링 사이드에선 같이 있던 폴 베어러의 모습 또한 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창백한 피부, 검은 모자와 옷, 장송곡에선 모티브를 얻은 소름 돋는 테마곡은 하여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돌아왔고 케릭터를 사람들에겐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었습니다. 데뷔 당시 헐크 호건의 상대로 일회성으로 끝날 기믹이었던 장의사 기믹은 요렇게 성공적인 반응을 얻어서 정식으로 채용된 것 입니다. 프로레슬러에겐 기믹이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고, 경기력이 암만 좋아도 기믹에 개성이 없어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 둘을 겸비했던 언더테이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는 셈.



언더테이커의 여자관계

그는 1989년에 조디 린과 결혼하여 사이에 아들까지 얻었지만 결혼 10년만인 1999년 이혼하고 2000년 새라와 재혼하여 두 명의 딸을 뒀습니다. 2번째 아내인 새라는 이름을 목에 문신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으나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2007년 이혼했으며 이후 미셸 맥쿨과 사귀기 시작하여 2010년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목에 새겨져 있던 문신은 지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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